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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多讀)/800 문학

전희식∙김정임 지음, 『똥꽃: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그물코, 2008.

by 오류동최주부 2020. 11. 25.

서지 정보

전희식∙김정임 지음, 『똥꽃: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그물코, 2008.

 

저자 정보

전희식(全喜埴)

1958년 경남 함양의 황석산 아래 동네에서 태어났다. 곡절 많은 학창시절과 청장년기를 거쳐 1994년에 전라북도 완주로 귀농했다. 자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농사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 자연 속에서 만물과 소통하는 삶을 추구하며 산다. 치매가 있는 여든 일곱인 어머니와 둘이서 살지만 사정이 되는 만큼 대안교육과 대체의학, 민간신앙과 상고사상, 뇌과학과 양자물리학, 몸살림과 마음살림, 생태학과 자연농법 등 존재의 ‘총체생명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로 일하면서 ‘보따리학교’와 ‘스스로 세상학교’ 일에 열성이다. 귀농생활을 정리한 책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역사넷, 2003)를 냈다. nongju@naver.com

 

김정임(金貞任)

1922년 경남 함양 서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서당 훈장이신 아버지 밑에서 대여섯 살 때부터 고전들을 읽으며 자랐다. 당시 여자아이로는 드물게 소학교를 다니면서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가서 5년여를 살았다. 열네 살에 결혼하여 열두 남매를 낳았다고 주장하지만, 가족들이 아홉 남매였다고 하는 걸 보면 유산된 아이까지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5~6년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였는데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몸과 정신에 긍정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이 책의 모든 소재를 제공하셨고 질박한 지방어로 책의 줄거리를 엮었다.

(*저자 정보는 서지 내 정보를 옮겼습니다.) 

 

내용 요약

책 표지에서 이미 *씬나락을 다 쳤다. 제목 '똥꽃'의 의미는 온 집을 가득 채운 어머니의 똥칠을 보며 어머니의 막내 아들인 저자가 지은 시詩의 한 구절에 담겨있다.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 방안에는 /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 검노란 똥자국들. // 어머니 신산했던 세월이 / 방바닥 여기저기 / 이불 두 채에 / 고스란히 담겼네(49-50)." 어머니의 똥칠을 '꽃'으로 표현한 저자가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인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며, "그 많은 자식 키우면서 어머니가 똥오줌 묻은 옷이나 걸레를 빠신 횟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두세 자식 몫은 하리라" 마음 먹은 막내 아들이 시골에 집을 짓고 어머님을 모시어 1년 동안 함께 살아간 이야기이다.

 

저자는 언제나 어머니의 건강보다도 '존엄'을 더 귀하게 생각한다. 매일 집을 나설때와 집에 들어올 때,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린다. 대소변을 못가린다고 음식을 적게 주지도 않고, 거동이 불편하다고 마냥 누워만 계시라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듯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정해진 시간에 대소변을 가리기를 가르치고, 어머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주고, 어머니를 자꾸만 집 밖으로 모시고 나간다. 어머니를 바보로 만드는 도시를 떠나, 어머니 원래 '나와바리'인 산과 들로 모시고 가서 그분의 옛 경험, 그 지혜를 경청해서 듣고 배운다.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 치매"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노인들의 악담과 저주, 또는 의심과 불안 증세는 질병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일종의 치유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말한다. "그런 행위를 보장하고 잘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많은 일상을 놓치지 않고, 사랑하고, 기억하며, 글로 되살린다. 발문을 인용하면, 이 책은 농부 전희식과 치매 어머니 '서로가 한 몸이 되기 위한 울림'이다. '자식 없는 삶은 가능하지만 부모가 없는 삶은 없기'에, 이 울림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은은하게 스민다.

(*씬나락: 볍씨-못자락에 뿌리는 벼의 씨-의 방언(경상∙전라))

 

소감

명절 전에 조금 더 부지런했다면,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면, 이번 명절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명절보다 더 귀중한 일상과 시간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언젠가 그런 말을 주워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 이유에 관해서. 우리의 뇌는 한 장면을 포착하면 자연스레 그 다음 장면을 예상한다. 그 예상한 시나리오 혹은 레퍼토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 예측을 완전히 어긋날 때 일어나는 여러 현상 중 하나가 ‘웃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울음에 가까운 감동의 미소가 계속해서 흘렀다. 그것은 아마도 나라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책의 뒷 표지에서 한 분이 언급하신 것처럼, 저자는 "제 어머니라는 생각을 넘어 세상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노인'이라는 주제와 그 주제에 뒤따르는 여러 문제의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의 말처럼, 나 또한 '노인'을 불편한 존재 혹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라 여겨왔다. 그런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책을 만나 부끄러워졌고, 그래서 감사했다. 나의 삶을 뒤흔든 누군가의 생각이 허공의 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길어 올린 것이라 감사하다. 앞으로 '노인'이라는 주제를 마주할 때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올곧게 강조하는 그 가치를 떠올릴 것이다. 이 또한 감사하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청력이 나빠지면서 의심은 늘고 목소리는 커져서 가족들이 힘들어했다. 돌이켜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의 사정을 나름대로 가족들에게 이해시켜보려 애썼던 그 경험이 이 책을 더 깊이 읽게 한 것이 아닐까. 노인의 곤란함을 '이해'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씬나락을 쳐주신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다.

 

내가 저자라면

몇 년 전부터 어머니가 '치매'를 걱정하신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치매 보험'이 유행이라고 하신다. 몇년 전부터 저녁 드라마에서 치매 걸린 노인 역할이 많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런 어머니의 걱정에 한 몫 단단히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많은 걸, 또 자주 깜빡 잊으시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한 가지 든 생각은, '어머니의 나와바리는 어디일까?' 라는 물음이었다. 시골(농촌)과 도시(산업화), 그 경계를 살아내신 어머니. 인생의 반은 시골에 있었지만, 또 인생의 반은 도시생활을 즐기고 있는 어머니의 나와바리는 어디일까? 지금 바로 떠오르는 나름의 답은, 다행히도 어머니가 한평생을 ‘부산’에 사셨다는 사실이다. 

(검색해보니, 전희식 선생님은 2015년 1월 12일에 어머니를 여의셨다. 이 책이 출판되고 8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함께 보내셨고, 지금은 홀로 그 집에서 머물고 계신다고 한다. 내가 저자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공명하는 글 또는 책

-엄기호 지음,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나무연필, 2018년 12월.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원마루 옮김, 『나이 드는 내가 좋다』, 포이에마, 2014년 1월.

-폴 투르니에 지음, 강주헌 옮김, 『노년의 의미』, 포이에마, 2015년 6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여러 책들. 추천은 많이 받았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꼭 읽어보고 싶다.

 

반짝이는 구절(글귀 모음)

열 문장만 엮어 올립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삭제하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흐트러지셨지만 어머니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역할을 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우리 형제와 친척들을 튼튼하게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한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 하나를 선물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12)

 

"유산도 하고, 갓 놔서 잃은 자식도 있지만 모두 열두 명이나 되는 자식을 낳은 어머니 음부의 새하얀 체모는 온갖 풍상을 헤치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진 세월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16)

 

"그 많은 자식 키우면서 어머니가 똥오줌 묻은 옷이나 걸레를 빠신 햇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두세 자식 몫은 하리라 마음먹었다." (17)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어머니가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33)

 

"냉방기와 난방기가 정해 놓은 온도에 맞춰 방안에서 사계절을 다 맞이해야 하는 생활.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면 암흑세상이 따로 있을까. 10년 이상 그렇게 살았던 어머니 눈에는 세상 좋아진 것으로 보일 수밖에." (43)

 

"어머니의 존엄성과 존재감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 못지않게 어머니도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56)

 

"시골에 오니 세상 것들이 하나둘 이른바 어머니 ‘나와바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접나비와 호랑나비도 구별해 냈고 녹두잠자리와 물잠자리를 멀리서도 보았다." (70)

 

"어머니는 할 만한 말을 하는 것이다. 헛말은 없다. 그런 말을 하는 그분의 사정을 내가 속속들이 알지 못할 뿐이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앞뒤가 안 맞고 사실이 아니라 해도 어머니는 그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86년의 세월을 바친 것이다." (98-99)

 

"어머니 굴절된 삶의 현재적 표현이 지금의 치매다. 오늘의 어머니를 인정하려면 고른 삶뿐 아니라 굴절된 삶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다. 치매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머니 인생은 일찍 사라졌을 수 있다." (99)

 

"사람의 모든 행동과 말은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최고이자 최선의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서 그 다음 일을 도모하는 것이 순서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는 나중의 일이다." (140)

 

“나 같은 거는 사람도 아잉기 농띠처럼 죽지도 않고 니 짐떵어리다. 니 짐떵어리.” (210)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태우지 말고 니가 입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누가 머락카믄 그래야, 우리 어무이 생각나서 어무이 옷 입는닥고.” 그렇게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말뿐이 아니라 닳아 못 입을 때까지 어머니가 주신 조끼를 입기로 마음먹었다.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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