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복해서 짓는 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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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정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아내는 가끔 묻는다. 언젠가 한 번, 이 질문에 꽤 쌀쌀한 태도로 답한 적 있다. "나는 지구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구가 많다고 생각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지 생각해 봐. 이런 상황에서 또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는 게 ‘죄’가 아닐까? 지구에도, 그 아이에게도. 꼭 아이를 키워야 한다면, 이미 태어난 아이를 입양하는 건 어떨까?" 이런 말을 아내 앞에 쏟아낸 것 자체가 '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史實)'이다. 이를 통감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발한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로마서 8:22) 일상이 온통 죄, 즉 '타자를 향한 폭력'으로 물들어 있다.
테드 W. 제닝스는 『무법적 정의: 바울의 메시아적 정치』에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뼈아프게 짚는다. 그는 "우리 모두가 피로 물든, 땅으로부터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기억으로 가득한 사회적 질서의 일부라는 점을 상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죽는 이유는 정치나 경제 어떤 면에서든 구조의 잠재적 폭력"이라고 단언한다. 나아가 "매년 빈곤으로 인해 사망하는 수백만을 생각"한다면 "무시에 의한 혹은 우리의 탐욕이나 무관심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로서의 죽음 또한 여전히 동족살해(법적 용어로는 과실치사)"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로마서 3:23) 한국 개신교회는 바울의 이 말을 원죄 혹은 전적 타락의 틀로 읽고 또 가르쳤다. 하지만 나는 위 구절의 바른 해석이 "원죄의 교설 같은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죄의 교설"이라고 말한 제닝스의 말을 지지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 인류는 스스로를 '소비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소비하는 인간에게 '착한'이라는 형용사를 덧댈 수 있을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것이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소비하는 매 순간이 폭력으로 오염되어 있다. 폭력을 자각한 뒤, 일상을 고쳐보려 애썼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축 과정에서 자행되는 폭력은 나를 채식주의자로 만들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했다. 1분에 41명씩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그 숫자를 줄여보겠다고 나름대로 애쓰지만, 쓰레기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물티슈 대신 행주를,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지만, 곧잘 잊고 편리함에 취해 다시 쓰레기를 땅에 파묻고 바다에 흘려보낸다. 우리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바꿀 때마다 새로워진 성능에 관심을 두지만, 한 대당 0.02g 들어가는 '탄탈'이라는 광물이 벌인 전쟁에 콩고 아이들 3만 명이 징집되었다는 사실에는 무지를 넘어 무관심하다. 제닝스가 꼬집듯,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 손에는 피가 흥건하다.
최근 햄버거 프랜차이즈들이 '토마토 없는 햄버거'를 내놓았다. 올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과 장마 때문에 토마토 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다. 기후변화가 이대로 계속되면 우리나라 옥수수, 쌀, 감자 생산량이 2/3로 줄어들고, 고추 생산량은 90%가 감소하며, 사과는 아예 자취를 감출 것이라 한다. 지난 2013년,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덮쳤다. 사망자만 6,300명이 넘었다. 필리핀 소녀 조안나 수스텐토는 부모님과 큰오빠 부부, 세 살배기 조카까지 잃었다. 그녀는 이렇게 호소한다.
"기후변화는 통계와 숫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취한 모든 것,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요즘도 가끔 묻는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냐고. 그때마다 지구 어딘가에서 스러지는 생명을 기억한다. 동시에, 태어날 아이를 상상한다. 혹 그들처럼 스러져 버리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죄스러운 마음이다. 지구에도, 그 아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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